가난

2004/10/31 23:37

아무 약속없는 일요일이면 언제나 느지막이 오후쯤 일어나서,
그 후에도 있는대로 늑장을 부리다가,
결국 부시시한 채 지갑을 들고 집 근처의 시장골목으로 나간다.
해먹기가 귀찮고 자신도 없는 나는 보통 할인마트나 편의점에서
레토르트나 햇반따위를 사서 덜렁덜렁 들고 돌아온다.
이 녀석들은 알고 보면 싼 게 아니라서,
내 자금 사정을 생각할 때 좀 과소비군 싶을 때가 많지만.

요즘은 집으로 가는 골목 바로 옆 정육점에 진열된
돈까스용 고기 더미들을 자꾸 바라보게 된다.
600그램에 5천원.
몰랐었다.
5천원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란 걸.

내가 알기로 내 삶은 언제나 가난했다.
부모님 또한 원래 부유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배경인데다
두 분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나와 동생이 태어난 후에도
아버지는 수없이 사업이나 직장에서 실패를 겪었고,
그래서 돌아보면 풍족했던 시절이란 기억 속에 거의 없다.

그 가족이 가장 최악의 형태로 한 구성원의 상실을 경험한 후
...다행이랄까 뼈저린 가난과는 차차 멀어지는 듯도 하다.
(하지만 집안의 세세한 사정에 어두운 나로선 확신할 수는 없는 일)

어머니는 얼핏 약해 보이면서도 알고보면 꿋꿋하게(?)
이 세상 잘 살아나갈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분이라,
갑자기 지금의 상태에서 곤두박질치거나 하리란 걱정은
일단 하고 있지는 않지만,
최근 시작하신 일이 예상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고,
전화기를 통해서 말씀하신다.

지금의 나는 몇년전과 비교한다면야 꽤 멋지구리하게도(...)
거의(거의...)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이루었다.
그 옛날 꿈꾸었던 뭔가 삐까번쩍한 그런 성인 여자의 생활은
아직 하고 있지 못하지만...언젠가는 그런 날도 오겠지.
(우선 소비패턴부터 바꿔라 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;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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